애초부터 언어는 인간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간 외 어떤 생물이 언어를 구별하겠는가? 복잡 다난한 감정의 미묘함을 위해 고심 끝에 만들어낸 기호와 발음들. 인간이 쓰는 언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단어 하나에 세월의 흐름과 개혁이 묻혀 있다. 비단 언어 만에 국한된 상황도 아니다. 예를 들자면 쉽게 자동차를 들 수도 있겠지.
최초의 내연기관은 문자 그대로 큼지막한 상자였다. 투박한 쇳덩이가 세월이 흐르자 놀라울 정도의 미학을 내비친다. 디자인, 기계공학, 공기역학, 물리학, 기타 등등. 최후에는 이름(단어)까지.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말처럼 이화작용이 이루어지는 한 볼펜 한 자루에서도 우리는 철학을 볼 수 있다. 진리를 감상할 수 있다……
"더워~"
토오코가 책상을 두드리면서 투덜거렸다. 딴 생각하는 것도 한계다. 줄줄 흘러내리는 끈적끈적한 땀과 함께 치솟는 불쾌감 덕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추적을 모조리 따돌린 다음, 일본에 정착한 지금. 그녀의 최대 우환 거리는 폭염이었다.
더위쯤이야 선풍기만 틀어도 된다. 중요한 건 그걸 핑계 삼아 늘어지는 자신이다. 화풀이인지 뭔지, 어쨌든 느닷없이 찾아든 동생께서 한바탕 난리를 치셨기 때문에 물건도 뺏기고 사역마도 죽어버렸다. 의욕이……
"나올 리가 없잖아!"
분노한 영웅처럼 두 손을 쳐들다 다시금 허물어졌다. 힘없이 중얼거렸다.
"더워……."
일은 해야 되는데 의욕은 없으니. 모두 취소시켜버리면 맘이야 편하겠지만 아는 사람들이라 그러기도 힘들다.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면서 도면을 노려보는데 성질나게도 전화가 왔다. 토오코는 한계를 체험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앳된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답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여보세요. 혹시 아오자키 토오코 씨 계십니까?"
"본인입니다만, 용건이 뭐죠?"
짜증이 담긴 퉁명스런 어조에 남자는 당황한 빛을 띠었다. 가만, 이름은 어떻게 안 거지?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거야? 늘어졌던 긴장감이 탄력을 받은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일변했다.
"저기, 전화상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꼭 찾아뵙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저 주소-"
토오코는 무심하게 전화를 끊었다. 전화 정도야 아무렇게나 쳐도 일정확률로 걸린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코가와 맨션 설계나 하는 게 낫다. 게다가 뭔가 낌새도 석연치 않아서 '그게 뭘까?' 고민하는 데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퍼즐 조각 몇 개가 빠져서 그림을 완성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괴리감.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눈썹을 찌푸리며 토오코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소리쳤다.
"알아서 찾어!"
그리곤 끊었다. 물론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계속 전화할 테니까, 미리 싹을 잘라버리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가람의 당에는 두 번째 침입자가 입성하게 되었다.
거기다 마술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토오코는 청년을 윽박질러 봤지만 정말 그랬다. 마술 반응도 없었기에 처음 침입자를 느꼈을 때에는 오류는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였다.
남자의 이름은 고쿠토 미키야. 막무가내로 일하게 해달라는 게 꼭 같은 말을 지껄이는 앵무새 같았다. 첩자나 자객은 아닌지 의심에 의심을, 분석에 분석을 되풀이해보아도 무의미했다. 이놈은 무공해 물질이었으니까.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대신 남도 이 녀석에게는 다가가지 않는다. 일정한 간격이 있는 사내에게 토오코는 흥미를 느꼈다. 특히나 재능이 재미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자 사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